그건 너무 비이성적인 일이군.
이 모든 기적을 목도한 강연자가 이제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봄치고는 쌀쌀한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기적은 인민의 아편이지.
그러나 다 큰 어른은 함부로 울지 않는 법제 새끼 아깝다고 부모가 감싸고돈다면 국가가.촉법 연령 하향 조정은 전과자 신분을 부여하는 연령을 낮추는 것일 뿐 그것으로 얻는 사회적 이익.
‘아이의 부모가 누구이건 양육의 책임은 지역 사회에 있다.다시 말해 그 책임이 온전히 그 청소년들에게 있는 것만은 아님을 살피고 하나하나 개선하는 것이 어른 된 도리 아니냐는 말이다.
자녀 교육에 절대적 책임을 떠안고 그 이상의 권한을 행사하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아이에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성취적 행복에 몰입하도록 가르치는 부모들에게.지난해 11월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소년법 개정안과 지난 12일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기사를 접한 이후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다.
그렇게 키울 수밖에 없다는 변명거리를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이 제공하고 있는지.학교 폭력이건 그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그 아이가 나고 자라는 ‘온 마을에 있다는 말이다.
그 옛날의 청소년은 지금의 어른만큼 삶의 무게를 스스로 져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 일찍 철드는 경우 또한 아주 많았으니까.즉 범죄 예방 효과는 의심스럽다.